이번 글에서는 제 9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극영화상 총 4관왕을 하고,
제 72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는 등
한국 영화사에 큰 획을 그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폭우가 쏟아지던 밤, 기택(송강호)네 가족이 박사장(이선균)네 집에서 몰래 빠져나와 비를 맞으며 자신의 집으로 급히 돌아간다. 부촌의 언덕길을 서둘러 내려가는 가족들, 그리고 빗물을 빨아들이는 하수구 구멍. 경사진 길과 기나긴 계단을 줄지어 내려가는 기택네 가족을 카메라는 그들의 옆에서 익스트림 롱 샷으로 잡는다. 덕분에 그들은 작은 개미처럼 보이기도 한다. 계단을 지나 터널로 들어온 기택네 가족은 비를 쫄딱 맞아 온몸을 떨면서 차 한 대 다니지 않는 긴 터널길을 쉬지않고 걷는다. 모두가 잠든 밤, 카메라는 다시 한 번 가족들을 익스트림 롱 샷으로 잡아 그들이 인간의 눈을 피해 제 집으로 돌아가는 동물처럼 묘사한다. 또 다른 계단을 내려오는 가족들. 지금까지 한시도 쉬지 않고 걸어온 탓에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기택네 가족은 그제서야 잠시 멈춰 숨을 돌린다. 이렇게 박사장네 집은 그들에겐 너무 멀고 높은 곳이었다. 기택네 가족들이 주인 없는 집에서 주인 행세를 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상 낙원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었을 때, 진짜 기택네 집은 폭우에 잠겨가고 있었다. 잠깐의 꿈이 달콤했던 만큼 차가운 현실로 돌아오는 것은 더욱 고통이었다. 애초에 꿔서는 안되는 꿈이었을까? 그 꿈은 현실을 포기할만큼 가치가 있던 걸까. 낙원을 경험한 이상 이제 기택네 가족은 예전의 평범하고 소소했던 일상에 안주할 수 없었다. 냄새나고 불편하더라도 편안하고 안전했던 그들의 보금자리는 이젠 벗어나고 싶고, 또 벗어나야만 하는 지옥이 되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반대의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 폭우가 내리던 밤, 기택네 가족은 비가 내리는 방향인 위에서 아래로 걷고 걸어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갔다. 언덕 위의 박사장네 집 주차장 입구에서 몸을 잔뜩 낮춘 채 그곳을 빠져나왔던 그들은 언덕 아래로 하염없이 걸었고, 계단 아래로 또 걸었고, 깊은 터널을 지나 또 다시 계단을 내려갔다. 마치 물이 밑으로 흐르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가족들이 끝없이 아래로 내려갈 때 익스트림 롱 샷이 종종 등장했는데, 이 장면은 거대한 사회 구조 내에서 기택네 가족이 어디쯤 위치하는 지를 관객들에게 상기시켜 주었다. 또한 남들은 다 자고 있는 늦은 밤, 기택네 가족이 박사장네 가족에게 들키지 않도록 자신들의 몸을 한껏 낮추고 발소리를 죽여가며 본래 집으로 줄 지어 돌아갔던 모습은 그들이 이 사회 안에서 남들의 눈에 띄지 않고 또 눈에 띄어서는 안 되는, 마치 바퀴벌레처럼 보잘것 없고 하찮은 존재라는 것을 상징하고 있었다.
문득 기우(최우식)는 자기 발 밑으로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는 빗물을 바라본다. 물이 아래 방향으로 흐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자연의 섭리이고, 그것을 거스를 도리는 없다. 어떻게 해도 변하지 않을 현실 앞에 기우는 무력해진다. 창문을 열어두고 나온 것도 잊었던 가족들은 빗물이 허리까지 차오른 집을 보며 망연자실 한다. 기정(박소담)은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같은 변기 위에 앉아 덤덤한 얼굴로 천장에 숨겨뒀던 담배를 꺼내 문다. 기우는 친구 민혁(박서준)이 준 재물을 불러들인다는 돌덩이를 끌어안고 이를 챙겨갈지 고민한다. 같은 시간, 문광(이정은)은 지하실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뇌진탕에 걸려 사경을 헤매고, 기택에 의해 몸이 묶인 근세(박명훈)는 아내의 죽음을 지켜보며 그 깊은 지하실에서 아무도 듣지 못하는 고통의 비명을 지른다. 기택은 울 것같은 얼굴을 하며 목까지 잠겨버린 집에서 상자 하나만을 챙겨 집을 떠나고, 이튿날 가족들은 이재민 임시 대피소인 실내체육관에서 일어난다.
영화 전반을 관통하며 끊임없이 반복되는 상승과 하강의 이미지는 우리 사회 속 뚜렷한 계층 간 경계와 그 간극을 보여준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게 당연한 일인 것처럼 우리의 사회 내에서도 위에서 아래로 추락할 수는 있어도 그 반대의 경우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비관적인 현실을 영화는 말하고 있다. 또 물은 아래로 갈수록 더러워지는 법이다. 박사장네 가족보다 기택네 가족이, 기택네 가족보다 문광네 가족이 더 불쾌하고 절망적으로 그려졌다. 영화의 결말에서도 돈을 아주 많이 벌겠다는 기우의 계획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계획은 자기기만이며 모두에게 희망고문이다.
폭우씬에 나왔던 길고 긴 계단 촬영지는 부암동이다. 실제로 계단 입구에 '영화 기생충 촬영지'라는 푯말이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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