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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밀양> - 지옥과 구원, 그리고 이어지는 삶

영화 봤음

by Team A(아) 2020. 8. 11.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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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밀양>은 이창동 감독의 작품이며, 2007년에 개봉했다. 전도연 배우는 이 영화로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개인적으로 한국 영화 중에 손에 꼽을 정도로 좋아하는 영화다. <밀양>의 원작은 이청준 작가의 <벌레 이야기>인데, 이야기의 결말은 서로 다르다.

 

 

1. 영화 전체 줄거리 (*스포 주의)

 

 

  사고로 남편을 잃은 신애(전도연)는 남편의 고향이자 그가 생전에 살고 싶다고 했던 밀양으로 아들 준(선정엽)과 이사를 온다. 신애는 밀양에 오자마자 피아노 학원을 차리고 투자할 땅도 알아보면서 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여유있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사실 그녀는 도망을 온 것이다. 남편의 외도를 알면서도 애써 외면했던 그녀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약한 모습을 감추고 센 척을 하는 인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 준이 유괴를 당한다. 유괴범에게 여기저기 끌려다니던 신애는 자신은 사실 가진 것이 없다고, 다 있어보이려고 거짓말 한거라고 숨겨왔던 속사정까지 털어놓는다. 그러나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준의 차가운 시신. 남편에 이어 아들까지 잃은 신애는 절망한다. 그러다 우연히 교회 앞에 걸린 플랜카드를 보고 홀린 듯이 교회 안으로 들어간 신애는 목사의 앞에서 목놓아 울부짖는데, 이후 그녀는 하나님을 믿게 된다. 종교를 통해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고 생각한 신애는 살인범을 직접 만나 그를 용서해주기로 한다. 하지만 막상 마주한 살인범의 얼굴빛이 생각보다 좋다. 게다가 그는 자신이 이미 하나님께 용서를 받았다고 하는 게 아닌가. 이미 용서받은 사람을 어떻게 다시 용서할 수 있을까. 신애는 또 다시 좌절한다. 지옥 같은 현실 앞에 신애는 이성을 잃고 폭주한다. 그리고 결국 과도로 자신의 손목을 그어버린다. 정신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신애는 퇴원 후 볕이 드는 집 앞 마당에서 길게 자란 머리카락을 스스로 자른다.

 


2.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

 

  신애(전도연)가 살인범을 면회갔던 씬은 마치 폭풍전야와도 같았다. 전보다 더 끔찍한 지옥이 문을 활짝 열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들을 유괴하고 살인한 살인범(조영진)을 만나서 그를 용서해주고 싶다는 신애에게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 중 제일 지키기 어려운 것이 네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말이라며 그녀를 걱정한다. 하지만 신애는 기어코 그를 만나러 간다. 죄책감과 괴로움에서 그녀는 그만 벗어나고 싶었다. 자신이 살인범을 ‘기꺼이’ 용서해준다면 진정한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죄수복을 입고 신애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살인범의 모습은 신애의 예상 밖이다. 어쩐지 전보다 안정되어 보인다.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멀끔하다. 신애는 당황한다. 

  “얼굴이 좋네요, 생각보다.” 

  신애는 다시 용기 내어 그를 용서 해주려 한다. 하나님 덕분에 마음의 평화를 얻었기에 당신에게도 그분의 은혜와 사랑을 전해주러 왔다고 신애는 말한다. 그러자 살인범이 옅은 미소를 짓는다. “고맙습니다.” 살인범은 자신도 교도소에 들어와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고, 하나님께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하자 하나님이 이를 용서해주었다고 말한다. 

  “하나님이 죄를 용서해주셨다고요..?” 

  충격 받은 신애가 반문한다. 그렇다. 그는 하나님께 ‘이미’ 용서받았다. 신애는 혼란스럽다. 어떻게 사건의 당사자이자 피해자인 내가 용서를 하기도 전에 당신이 용서를 받았다는 말인가. 살인범의 말은 신애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고, 그녀는 결국 무너진다. 이겨냈다고 생각했는데, 강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보다. 모든 것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다. 아니 그보다 더 끔찍했다. 그동안 죽을 힘을 다해 그녀가 걸어온 길은 마음의 평화를 얻는 길이 아니라 벼랑 끝 낭떠러지로 향하는 길이었다. 그리고 그 낭떠러지 밑에는 절망이라는 바다가 있었다. 면회실을 나와 넋을 놓고 걷던 신애가 정신을 잃고 길 바닥에 쓰러졌던 것처럼 그녀는 낭떠러지 아래 바다로 힘없이 추락했다. 그녀에겐 이제 수면 위로 올라와 숨을 뱉을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끝없이 밑으로, 또 밑으로 가라앉을 뿐이었다.    

 


3. 왜 그렇게 찍었을까

 

  면회씬은 음악 없이 기본 오버숄더샷과 클로즈업으로 촬영되었다. 배우의 얼굴에 집중하는 클로즈업 샷은 관객이 인물의 표정과 감정, 그리고 그들이 나누는 대화에 감정적으로 이입하게 만든다. 또한 클로즈업 샷에는 신애 뿐만이 아니라 그 뒤로 신애에게 줄곧 호감을 갖고 있던 종찬(송강호)도 함께 보이는데, 그는 신애의 뒤에 앉아 있기 때문에 면회 내내 신애의 얼굴은 보지 못하고 살인범만을 볼 수 있었다. 면회실을 나온 종찬은 함께 온 일행들에게 그놈도 하나님을 만나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고 했다며, 하나님의 힘이 무섭긴 하다고 웃으며 농담을 한다. 종찬은 신애가 살인범과 함께 하나님 이야기를 하면서 마음의 평화를 얻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는 착각이었다. 신애의 표정을 잠깐도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오해를 했던 것일 것이다. 아무리 신애를 좋아하고 그녀의 곁에서 힘이 되어 주려는 종찬이라 할지라도 신애의 슬픔과 절망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 신애의 울듯한 표정이 더욱 안타깝게 느껴졌다. 남편과 아들을 잃은 여자의 속을 누가 알겠는가. 그녀가 지금까지 겨우 버티고 있었다는 걸, 겉으로는 웃고 있어도 속은 결코 괜찮은 게 아니라는 걸 누구도 알지 못했다.  

 

 

  그에 반해 신애의 얼굴을 유일하게 볼 수 있었던 살인범은 그녀를 더욱 나락으로 떨어뜨릴 뿐이었다. 살인범의 얼굴은 모든 것을 초월한 듯 평온했고 안정되어 있었다. 아이러니하다. 죄를 저지른 자는 자긴 용서를 받았다며 여유로운데 반해, 피해자는 한없이 무기력해 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자신의 어린 아들을 죽인 살인범을 용서하러 갔다가 되레 더 큰 좌절과 절망을 경험한 신애는 세상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한다. 설교하는 목사와 기도하는 신도들을 시끄러운 음악으로 방해하기도 하고, 신애에게 처음 교회를 권했던 약사의 남편을 유혹하고, 과도로 손목을 그어버리기에 이른다. 살인범 면회 후 자신을 이성적으로 제어하지 못하고 끝없는 절망에 빠져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신애에게 그날 살인범으로부터 들었던 말들은 결코 잊을 수 없는 끔찍한 기억 중 하나였을 것이다. 용서란 무엇일까. 진정한 용서라는 건 과연 가능할까? 내 인생을 망친 사람들에게 우리는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할까.    

 

 

  우리는 평생을 타인과 함께 살아간다. 누군가로 인해서 내 인생을 구원받을 수도 있지만, 나의 삶을 망치고 짓뭉개버리는 자와 평생 악연으로 얽힐 수도 있다. 영화 <밀양> 속 신애는 남편도, 자식도 허무하게 잃었다. 답답하고 억울한 마음에 대체 나에게 왜 이러냐고 누구든 붙잡고 묻고 싶었을 거다. 그런 신애에게 종교가 잠시 힘이 되어주는 듯 했다. 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더 큰 배신감이 되어 그녀에게 돌아왔다. 답을 찾지 못한 신애는 결국 스스로를 해치고 만다. 하지만 그녀는 살아났고, 몇 개월 뒤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미용실에서 살인범의 딸을 우연히 마주친 신애는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가버린다. 집으로 돌아온 신애는 마당에서 스스로 머리카락을 자르고, 영화는 그렇게 끝이 난다. 신애에게는 아직 극복해야 할 게 남아있는 듯 하다. 하지만 머리카락을 자르는 그녀의 얼굴과 뒷모습은 어쩐지 강인해보인다. 그리고 그녀의 곁에는 앞에서 거울을 들어주는 종찬이 있다. 대단한 희망을 담은 엔딩은 아니었지만 왠지 안심이 된다. 나를 상처 입힌 타인을 용서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 그 용서가 타인이 아닌 나를 위한 것임을 머리로는 알아도 당장 마음으로 와닿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옥같은 시간들도 결국은 흘러가고, 우리는 다시 삶을 살아간다. 신애의 집 마당 구석에 내려앉은 빛처럼 아주 좁고 낮은 곳에도 빛은 든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따뜻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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