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천국>의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2014년 작품이다. <샤인>, <킹스 스피치>, <캐리비안의 해적>에 출연한 제프리 러쉬 주연이다.
짝짓기 본능이 충족되지 않은 수컷 초파리는 일찍 죽는단다. 실연의 상처로 일찍 생을 마감하는 초파리를 상상해보니 숙연하다. 원문 기사, 한국 기사
영화 <베스트 오퍼>는 잠수이별을 경험하고 시름시름 앓는 수컷 초파리가 떠오르는 영화다. 특히 마지막 장면은 반복과 반전의 이미지를 공부하기에 딱 좋다.
버질 올드만은 성공한 감정사이며 경매사다. 어린시절 부모를 여의고 고아원에서 자랐으며 항상 단정한 복장에 자기 관리에 철저하다. 모쏠이다.
그런 그에게도 구린 구석이 있다. 그는 재능 없는 화가 빌리를 통해 자신의 경매에 나온 그림들을 값싸게 사들인다.
그의 유일한 안식처는 그가 평생에 걸쳐 모은 여인들의 초상화를 걸어놓은 비밀의 방이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돌아가신 부모님이 남긴 유산을 정리하고 싶다며 감정을 의뢰하는 전화가 걸려온다.
전화를 한 사람은 클레어 이벳슨, 극심한 광장공포증을 가진 여자다.
버질은 점점 클레어에게 동질감을 느끼며 그녀에게 빠져들고, 뒤늦게 찾아온 사랑에 행복을 느낀다.
그런 행복도 잠시, 마지막 경매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버질은 다정한 목소리로 클레어를 찾지만 그녀는 집 안 어디에도 없다.
버질은 이 모든 것이 그의 친구 빌리와 로버트 그리고 클레어의 사기였단 것을 알게 된다.
큰 충격을 받은 버질, 하지만 차마 경찰에 신고를 하지도 않는다. 비록 사기였지만 그의 삶에 처음으로 사랑을 알게 해준 그녀의 감정만은 진심이었기를 바라며 그는 오래 전 그녀가 가고 싶다고 했던 식당에 홀로 앉아 하염없이 그녀를 기다린다.
버질이 안타깝다. 이 안타까움이 마지막 장면에서 폭발한다.
#1.
버질, 클레어가 꼭 다시 가고 싶다고 말한 프라하의 한 식당에 들어온다. 항상 목까지 채운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던 그가 넥타이도 없이 윗 단추를 푸르고 안경을 쓰고 있으며 헤어젤이 발라져 있던 머리는 오늘 아침 물기만 털어낸 듯 하다.
#2.
가게 안으로 들어선 버질, 카메라는 버질의 걸음을 따라 뒤로 물러선다. 버질의 뒤로 클레어가 말했던 이상한 장식들이 보이며 다정한 두 남녀가 식당 문 밖으로 나가는 모습이 풀샷으로 잡힌다. 홀로 낯선 표정과 함께 식당에 들어온 버질과는 크게 대비된다.
#3.
곧 멈춰선 버질의 시선을 따라가는 시점샷이 이어진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하는 사람들이 보이고 카메라는 식당의 가운데 끝에 있는 빈자리를 화면 중앙에 잡는다.
#4.
빈 자리를 발견한 버질은 걸음을 옮긴다. 카메라는 버질을 따라가지 않고 버질은 화면 오른쪽으로 빠진다.
#5.
미디엄 사이즈로 빈자리로 걸음을 옮기는 버질의 뒷모습을 보여준다. #4에서 고정된 카메라가 그 자리에서 방향만 뒤로 바뀐 느낌이다. 화면 중앙에 2시 12분을 가리키고 있는 큰 시계가 보인다.
#6.
버질이 자리에 앉으며 샷 사이즈는 풀샷으로 바뀐다. 식당 양쪽에 앉은 사람들의 어깨만 살짝 걸친 채 식당에 혼자 앉은 버질의 모습이 유독 쓸쓸하다.
#7.
자리 앉은 버질,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문쪽을 살핀다. 샷 사이즈는 풀샷에서 미디엄샷으로 바뀐다.
#8.
문을 살피는 버질의 시점샷이다. 양쪽에 걸친 사람들의 어깨가 보인다. 식당에 앉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얼굴이 보이지 않는데 이전의 식사 장면에서 주변 사람들의 얼굴이 보이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는 곧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게 된 버질과 더 이상 사람들이 버질을 주목하지 않는다는 현실을 반영한다.
#9.
실제 촬영분에선 #7과 #9가 하나의 샷이었다. 시점샷이 끝난 후 #7로 돌아오며 문을 살피던 버질은 시선을 거둔다. 화면 왼쪽에서 종업원이 다가와 종이로 된 식탁 보, 물컵, 포크,나이프를 세팅한다. 항상 정갈한 천으로 깔린 식탁 보 위에서 고급 식기들로 식사를 하던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종업원이 묻는다.
#10.
샷 사이즈는 미디엄 클로즈업으로 바뀌며 종업원은 화면 밖에 있다. 버질은 종업원을 바라보더니 잠시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 종업원을 바라보며 대답한다. 대답 후에 버질은 깊은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 그 한숨에 밀리듯 카메라는 천천히 뒤로 물러난다. 한 사람 분의 세팅을 더 하는 종업원, 식탁 위에 놓인 두 개의 물컵과 다시 한번 문 쪽을 살피는 버질. 엔니오 모리꼬네의 애잔한 음악과 시계 초침소리가 들린다. 카메라는 계속해서 뒤로 물러나며 사람들이 즐겁게 나누는 잡담 속에 홀로 입을 굳게 다문 채 클레어를 기다리는 버질을 남겨두고 페이드 아웃된다.
시각적 모티브의 반복과 대비라고도 한다. 인물의 변화, 사건의 반전 등 이야기를 극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 영화 <베스트오퍼>의 모티브는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는 남자’이다.
오지 않을 클레어를 기다리는 버질의 모습은 너무나 아련하다. 멀리 떠난 남편을 기다리다 죽어서 화석이 됐다는 ‘망부석’ 설화, 아폴론을 그리며 죽은 클리티에의 해바라기 신화부터 황진이의 시조 상사몽, 한용운의 님의 침묵, 영화 늑대소년(A Werewolf Boy, 2012) 등 많은 이야기들이 기다림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 기다림들 중 가장 많은 형태는 바로 ‘오지 않을걸 알면서 기다림’ 이다. 버질의 기다림을 대표하는 이 형태의 기다림은 대상의 상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서 기인한 방어기제이다. 스스로 기다리는 고통을 선택함으로써 아픔 후엔 보상이 돌아온다는, 떠난 대상이 돌아오길 바라는 보상심리의 반영을 보여준다.
떠난 대상에 대한 상실에 눈물 흘릴 힘 조차 없이 스스로를 속이는 모습이 우리의 마음을 울린다. 버질은 떠난 클레어를 두고 울부짖지 않는다. 다만 그녀가 언제 올까 애꿎은 식당 문을 살필 뿐이다. 짝짓기에 실패한 수컷 초파리가 그렇게 시름시름 앓다가 일찍 죽는 것처럼..
만약 당신의 연인으로부터 잠수이별을 경험 중이라면, 버질처럼 식당에 홀로 앉아 문만 바라보고 있지 않을까 한다.버질의 얼굴에서 스스로를 발견하며 가슴을 퍽퍽 치기에 딱 좋은 영화다. 당신의 클레어가 돌아오기를 혹은 새로운 인연을 만나 행복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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